정의기억연대(전 정대협)는 20일 자기 단체 원로 12명 명의로 최근 횡령·배임 의혹에 휩싸인 윤미향 전 대표를 두둔하는 '초기 정대협 선배들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대협 핵심이자 공동 창립자인 윤정옥(95·사진)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그런 입장문에 동의한 적도, 동의할 수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의연은 20일 수요집회에서 '초기 정대협 선배들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정대협 초대 공동대표였던 윤 명예교수와 이효재(96)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포함, 12명 이름이 담긴 입장문에는 '윤 전 대표는 정대협 설립 시에 간사로 시작해 사무총장, 대표직까지 오직 정대협 운동에 일생을 헌신한 사람'이라는 표현도 있었다.
하지만 윤 명예교수는 21일 본지 통화에서 "내 이름으로 입장문이 나갔느냐"고 되물은 뒤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입장문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또 "정대협과 윤미향 전 대표에게서 최근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윤 전 대표의 국회 진출에 대해서는 "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정대협 정신과 맞지 않는 일로, 할머니들에게 미안해서 못 할 짓"이라고 했다. 이어 "정대협은 처음부터 '정치와 엮이지 않는다'는 공감대 속에서 출발했다"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정치와 연결 짓는 것은, 이미 일본에 한 차례 이용당한 그분들을 두 번 이용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입장문 작성 경위에 대한 질문에 정의연 관계자는 "(정대협) 한 선배가 작성해 나머지 분들께 한 줄 한 줄 읽어드리고 동의받은 것"이라고 했다. 작성하고 동의를 구한 사람이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다.
윤정옥 명예교수는 1980년대 위안부 문제를 처음 공론화한 시민사회의 상징적 인물 중 하나다. 1980년대부터 일본·중국 등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고 다니며 홀로 연구했다. 그가 정대협을 만들었을 당시 윤미향 전 대표는 간사를 맡았다.
윤 명예교수는 정대협·정의연의 과도한 모금 활동과 거기서 불거지는 부정 의혹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기부는 고마운 일이지만 단체가 먼저 나서서 돈을 모금하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알리고 할머니들을 돕는다는 단체정신과 맞지 않는다"며 "1992년 시작된 수요집회 초창기만 해도 모금 활동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이어 "자꾸 돈을 모으기 시작하니 관련된 문제도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며 "의혹이 나오는 것 자체가 깨끗하지 못하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윤 명예교수와 함께 위안부 문제 연구를 처음 시작했던 이효재(96) 이화여대 명예교수 측에서도 윤미향 전 대표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고령(高齡)의 이 명예교수는 학교 은퇴 후 재산을 여성계와 사회에 헌납하고 경남 진해로 내려갔다. 이 명예교수의 제자이자 측근인 여성학계 중진 A교수는 21일 본지 통화에서 "한국의 척박한 가부장제 문화에서 여성학과 여성 운동의 기반을 다진 두 학자의 이름을 윤미향의 부정을 덮는 데 쓰지 말라"고 했다.
A 교수는 "윤미향을 지키기 위해 수요집회에서 은사님의 성함을 부르는 걸 보고 참담했다"며 "두 원로 교수는 1990년 정대협을 발족시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의 주요 의제로 만드는 데 헌신해온 분들" "윤미향에 대한 비판을 방어하기 위해 불명예스럽게 두 분의 이름을 올린 행위는 어디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