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이 정권의 목엣가시 같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쫓아내는 일에서 손을 떼면 좋겠다. 대신 법무부 본연의 임무인 국민 개개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에 집중해 주시길 바란다. 당장 성추행 2차 피해에 떨고 있을 서울시청 소속 직원을 자기 딸처럼 지켜주어야 한다. 오늘 박원순 시장의 서울특별시 장례식엔 고인의 품성과 업적을 기리는 사람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질 것이다.
다만 박 시장의 비극적 선택과 인과관계에 있는 ‘성추행 고소 사건’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흐지부지돼선 곤란하다. 성추행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규명돼야 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여성 인권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박원순 시장 생전 행적을 계승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한국 국민의 양식과 법의식은 어느덧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수준으로 성숙됐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다. 실수를 드러내 경계로 삼으면 된다. 다른 더 많은 공적이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기록되고 인정받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일부 지지층은 “억울한 누명으로 돌아가신 시장님을 위해 고소장을 낸 여성을 색출하자. 무고죄로 고발하자”는 등의 댓글 폭탄을 날리고 있다. 곳곳에서 ‘시장 비서’에 대한 폭력적인 신상털기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법무부 장관은 침묵에 빠졌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자기 문제에 대해선 “검찰총장이 지휘랍시고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 지시의 절반을 잘라 먹었다”거나 “내 아들의 신상 문제가 미주알고주알 나가고 있다. 더 이상은 건드리지 말라”며 엄중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했던 추미애 아니었던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소송에 참여했던 서혜진 변호사는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는 인사권자를 온갖 피해와 불이익을 각오하고 고소했는데 이튿날 자살하면 사망 문제까지 여성 피해자가 책임져야 하는 이중 트라우마 속에 평생 살아가게 된다. 이런 경우엔 자살도 가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성추행의 실상이 낱낱이 밝혀지는 게 트라우마 치유의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성추행 고소 사건은 실상이 밝혀지기는커녕 어둠 속에 묻힐 판이다. 검찰의 사건사무규칙에 따르면 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된다. 공소권 없음은 지금까지 “처벌할 수 없기에 수사할 필요도 없다”고 기계적으로 해석돼 왔다. 하지만 이제부터 “처벌할 수 없어도 조사는 할 수 있다”고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면 어떨까. 사람은 처벌하지 않더라도 죄는 조사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서울시 여성 피해자의 고소 내용을 어둠 속에서 건져낼 수 있다. 공소권 없음의 창의적 적용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찰에 지시해 달라는 게 기자의 바람이다. 검찰의 규칙 해석권은 법무부 장관한테 있다. 추 장관이 창의적 해석을 시도한다면 이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권의 실험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세상을 등진 박원순 시장도 사회적 약자 지켜주기 관점에서 고소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데 반대하지 않으리라 본다. 이승에서 박 시장의 명예 실추를 염려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과민반응일 뿐이다. 촛불혁명으로 훌쩍 커 버린 한국인의 시민의식은 박원순의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나눠서 평가하리라. 시대의 전진은 법령과 규칙의 진취적 해석을 낳는다. 예를 들어 헌법에 대통령은 재임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 이 조항은 건국 이래 ‘대통령은 소추할 수 없기에 수사도 받지 않는다’로 적용됐다. 그러나 2016년 11월 촛불시대에 이르러 검찰은 ‘대통령을 소추할 수 없어도 수사는 할 수 있다’고 창의적으로 적용했다. 추미애 장관은 윤석열 문제를 다루면서 소리만 요란하고 역량 부족을 드러냈는데 성추행 고소 사건에선 본연의 가치를 보여주기 바란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