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80억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것>
-김선오 시인-
DNA에 입력된 인간의 자연 수명은 38세라고 한다. 1992년에 태어나 올해 만 30세인 나는 곧 노년기에 들어서는 셈이 다.
위생과 의학의 발전은 인간의 평균 수명을 자연 수명의 2배 이상 끌어 올렸다. 현재 한국의 평균 기대수명은 83.5세다.
나날이 빨라지는 정보의 확산과 기술의 발달을 통해 인류의 평균 수명은 점점 늘어갈 것이다.
수명이 늘어간다는 건 한 개체에 주어진 미래의 총량이 늘어간다는 말과 같다.
미래의 총량이 늘어간다는 것은 곧 미래에 대한 불안 역시 그만큼 증가한다는 뜻일 것이다.
인간이 35살까지 살던 시절과 운에 따라 100살 까지도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요즘을 비교 해 보자면, 우리는 현재의 더 많은 시간을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너무 많은 미래만큼 과거보다 더 많은 불안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기나긴 인생 동안 아플 까 봐, 외로울까 봐, 스스 로와 가족들을 먹여 살리 지 못하게 될까 봐 우리는 불안하다.
얼마 전 지구의 인구가 80억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60억 지구 에서 널 만난 것이 럭키 하다는 숫자송이 들려오던 게 엊그제 같은데 80억이 라니. 너무 크고 까마득한 숫자다.
80억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지구에 80억 개의 얼굴이 있고, 느끼고 감각하는 80억개의 마음 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 다.
나처럼 긴 삶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이 땅에 80억명이나 더 있다니, 그 사실은 정말이지 기이하 다.
80억 타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다만 모두가 각자의 불안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서로에게 친절히 굴지 않을 이유는 없다.
머나먼 우주에서 볼 때 이 80억 지구도 작고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듯 수명 이 아무리 는다 해도 인류 전체의 시간에 비해 나의 삶은 찰나에 불과하며,
그 잠깐의 삶 동안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은 더더욱 짧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