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없는 십자가상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슬픈데 내막을 알면 더 슬퍼지는 예술품이 있다. 조각가 권진 규의 건칠(乾漆) 작품 ‘십자 가 위 그리스도’가 그러하다.
서른세 살의 나이에 십자가 형을 받고 세상을 떠난 예수 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런데 조각가는 삼베에 건칠 작업을 해 예수의 형상을 만들어 슬픔을 배가시킨다. 삼베의 거칠고 까끌까끌한 질감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느꼈을 고통과 고뇌를 반영하는 것만 같다.
‘십자가 위 그리스도’는 교회 의 의뢰를 받아 제작된 작품 이다. 그런데 교회는 좀 더 세련되어 보이는 성상을 원했 던 모양이다.
고통에 일그러지고 우울하고 다소 평범해 보이는 예수의 모습이 그들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그들은 신성보다는 평범한 인간성이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고 가져가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라고 달랐을까. 겉모습에 대한 집착은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는 그가 위대한 근대 작가라는 평가를 받지만, 우리도 그때 그 자리에 있었 다면 교회가 그랬듯 그의 작품을 냉대했을지 모른다. 하기야 당대의 평론가들도 그랬다.
작품에 대한 냉대에 상처를 받은 조각가는 작품에서 십자가를 떼고 자신의 작업 실에 걸었다. 그것은 그가 3년 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런 상태로 걸려 있었다.
‘십자가 위 그리스도’라는 작품에 십자가가 없는 이유 다. 그런데 십자가의 부재가 십자가를 더 환기하게 만든 다. 안 보이니까 더 생각하게 된다고 할까.
작가가 이 작품을 제작한 것은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 3년 전인 1970년, 마흔여덟 살이었을 때다.
그는 건칠을 통해 예수의 마지막 모습을 재현하려 했다.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거칠어진 예수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던 거다.
사람들은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 모습을 외면 하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십자가 없는 ‘십자가 위 그리스도’는 유난히도 긴 팔을 벌리고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같은 고통과 슬픔 속의 우리를 안아주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