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 너머의 자유>
Mahalia Jackson, ‘Deep River’(1976)
“위대한 나라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외면하지 않고 끌어안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노예해방일로 기념해온 6월 19일을 연방 공휴일로 지정하는 법에 서명하며 남긴 말이다. 지난 156년간 ‘준틴스(Juneteenth)’라는 애칭으로 불려온 이날이 성탄절, 추수감사절, 독립기념일 등에 이어 열한 번째로 연방 공휴일이 된 것이다.
수많은 학술적 논란이 이 순간에도 엉켜 있지만 남북전쟁이라는 비싼 내전의 대가를 치르며 이루어 낸 노예 해방이 미국이 공화국으로서의 근대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일익을 담당한 것만은 자명하다.
노예제도는 누구에게는 당연한 것이었고 누구에게는 수치였으며 또 누구에게는 거대한 사슬이자 억압이며 폭력이었다.
이 제도 안에서 배태된 아프리칸 아메리칸 문화는 한 세기 다음에 미국이 지구촌의 문화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강력한 영매가 된다.
흑인 영가(Spiritual), 블루스, 가스펠은 이 척박하고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태어났다.
이 미국 문화의 원천들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미시시피와 텍사스 노예들의 집단 지성과 감성에 의해 만들어진 대안적· 대항적 문화다.
가장 대표적인 흑인 영가 중의 하나인 ‘Deep River’를 듣는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최초로 뉴욕 매트 오페라 무대에 섰던 알토 메리언 앤더슨의 역사적인 가창이 귀에 쟁쟁하지만 접신의 주술성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머핼리아 잭슨의 가창을 놓칠 순 없다.
“깊은 강, 내 고향은 저 요단강 건너에 있습니다/ 가고 싶지 않습니까?/ 복음의 축제, 약속의 땅/ 모든 것이 평화로운 그곳에?”
죽어서야 평화의 땅에 이를 수 있었던 노예들의 비통한, 그러나 그 비통함을 딛고 일어서려는 간절한 의지가 기도처럼 펼쳐지는 이 노래가 더욱 의미 있게 들려오는 6월이다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