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72)이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라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공식 선임됐다. 이 극장은 오페라계에서 ‘꿈의 무대’로 불리는 세계 3대 오페라극장 중 하나로, 아시아인이 음악감독에 임명된 것은 247년 역사상 처음이다. 이탈리아 출신이 아닌 음악감독으로는 역대 두 번째 사례다.
라 스칼라 극장은 5월 12일(현지시간) 공식 성명을 통해 “정명훈이 리카르도 샤이의 후임으로 2027년부터 음악감독직을 수행하게 된다”고 발표했다. 임기는 2027년부터 2030년 2월까지로, 포르투나토 오르톰비나 예술감독의 재임 기간과 함께할 예정이다.
라 스칼라 극장, 247년 전통 깬 이례적 결정
1778년 개관한 라 스칼라 극장은 베르디, 푸치니, 로시니 등 오페라사에 길이 남을 거장들의 작품이 초연된 세계적인 공연장이다. ‘나부코’(1842), ‘나비 부인’(1904), ‘투란도트’(1926) 등 수많은 기념비적 작품들이 이곳에서 첫 무대를 올렸다.
음악감독으로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클라우디오 아바도, 다니엘 바렌보임 등 세계 정상급 지휘자들이 이름을 올렸다. 그 전통 속에서 정명훈의 선임은 그 자체로 역사적인 전환점이라 평가된다.
정명훈, 라 스칼라에서 141회 공연 이끈 베테랑
정명훈 지휘자와 라 스칼라의 인연은 1989년부터 시작됐다. 그는 라 스칼라에서 총 9편의 오페라 작품을 맡아 84회 공연했고, 콘서트는 141회에 달한다. 이는 음악감독을 제외한 지휘자 가운데 가장 많은 기록이다.
라 스칼라 극장은 “정명훈은 밀라노 관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 중 한 명”이라며, “그와의 관계는 언제나 친밀하고 생산적이었다”고 밝혔다. 극장 측은 그를 “라 스칼라의 국제적 명성을 높이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지휘자 중 한 명”으로 평가했다.
피아니스트에서 세계적 지휘자로
정명훈은 피아니스트로 음악 경력을 시작했으며,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공동 2위를 차지하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1978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로 발탁되며 지휘자로 전향했고, 이후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과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단에서 음악감독을 맡아 유럽 지휘자로서 입지를 다졌다.
한국 클래식 음악의 위상 높인 쾌거
이번 정명훈의 음악감독 선임은 단순한 개인의 업적을 넘어, 한국 클래식 음악의 세계적 위상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아시아 출신 음악가가 유럽 최고 권위의 극장에서 중심 역할을 맡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로, 국내외 음악계는 이번 발표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정 지휘자는 라 스칼라 측을 통해 “이 위대한 극장에서 음악감독으로 함께하게 되어 깊은 영광을 느낀다”고 소감을 전했다.